ARMS 개발자가 말하는 닌텐도 게임 개발 과정
2020. 1. 18. 02:05ㆍNINTENDO/닌텐도 개발비화
GDC2018
ARMS: Building Mario Kart 8 Insights into a Showcase Nintendo Switch Fighter
암즈: 마리오 카트 8에서 얻은 영감을 닌텐도 스위치용 신작 격투 게임에 접목하다
'마리오 카트 8 디럭스' 및 'ARMS' 프로듀서를 맡은 야부키 코스케(矢吹光佑)가 직접 설명한 ARMS 개발 과정 및 게임 관련 설정을 소개합니다.
'ARMS (암즈)'는 팔이 늘~어나는 파이터들이 대결하는 격투 스포츠 게임입니다.
ARMS 개발팀은 '마리오 카트 8 디럭스' 제작 경험을 바탕으로 게임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장르는 다르지만 서로 형제와 같은 존재라고 하네요.
ARMS 제작 과정을 돌아보며 마리오 카트에서 어떠한 영향을 받았는지, 그 경험을 어떻게 살렸는지, 그리고 그 바탕에 깔린 닌텐도의 개발 문화는 무엇인지 소개합니다.
레이싱 게임인 마리오 카트 개발자가 과연 격투 게임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닌텐도 개발자는 기본적으로 다양한 게임을 만든 경험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야부키 코스케 본인도 마리오 카트 시리즈뿐만 아니라 젤다의 전설 시리즈, 닌텐독스 등 여러 장르의 게임 개발에 참여한 경험이 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새로운 장르의 게임을 개발할 때 밑거름이 되며, 오히려 다른 장르를 잘 알기 때문에 독특한 발상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무리 스트리트파이터 같은 전설적인 격투 게임을 따라해봤자 그것은 단지 열화된 버전에 지나지 않으므로 만약 닌텐도에서 격투 게임을 만든다고 하면 다른 게임과 구별되는 무언가 독특한 요소를 발견했을 때일 것입니다.
'독특함'은 닌텐도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덕목.
미야모토 시게루가 개발자한테 '다른 게임하고 다른 점이 뭐야?' 하고 물어봤을 때 대답할 말이 없다면 그 게임에 미래는 없는 셈입니다.
닌텐도는 시작품을 만들며 늘 새로운 시도를 꾀하고 있지만 신규 IP로 세상에 나오는 것은 극히 일부라고 합니다.
마리오 카트처럼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IP도 있으며 ARMS처럼 갓 태어난 IP도 있습니다.
야부키는 어느 날 다른 개발자와 잡담을 하며 '캐릭터 뒤에서 바라보는 격투 게임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논의를 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ARMS의 시작이었습니다.
대부분의 격투 게임은 옆에서 바라보는 '사이드뷰' 방식을 채택하고 있으며 이는 상대방과의 거리를 재기 쉽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자신이 얻어맞을 위험을 무릅쓰고 상대방에게 다가가 펀치를 날린다! 이것이 격투 게임의 가장 기본적인 구조이니까요.
반면, 시점이 뒤로 가면 상대방과의 거리를 재기 어려워지기 때문에 펀치가 닿을지 판단하기도 어려워집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플레이어가 이리저리 움직이기까지 한다면 치밀한 눈치 싸움은 이뤄지지 않고 서로 헛손질만 하는 별 볼 일 없는 대결이 될 것입니다.
여기서 잠시 마리오 카트를 살펴볼까요. 멀리서 무언가가 나타나면 그에 맞춰 핸들을 꺾는 것이 게임의 기본적인 구조입니다. 정확한 거리를 몰라도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이용해서 피하기만 하면 되죠.
여기서 힌트를 얻어 발상을 전환. 시간이 좀 걸려도 공격이 닿기만 한다면 뒤에서 바라보는 격투 게임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개발진이 낸 아이디어였습니다.
기존 게임이 펀치가 닿는 '거리'에 중점을 두었다면, ARMS는 펀치가 '명중'할지 여부에 중점을 두어 화면 전체로 시선을 넓혔습니다. 이 아이디어를 시험해보기 위해 이들은 시제품을 만들었습니다.
시제품 단계에서 비주얼적인 요소는 신경쓰지 않는다고 합니다. 게임 디자인을 확인하는 것이 목적이므로 상자나 공 모양이라도 괜찮습니다.
시제품을 플레이해보니, ARMS는 가까운 상대와 펀치를 주고받는 권투 같기도 했고 멀리 있는 상대를 쏘는 슈팅 게임 같기도 했습니다.
플레이어는 한쪽 펀치를 쏜 다음, 다른 쪽 펀치를 원하는 타이밍에 쏠 수 있습니다. 첫 발은 미끼용 스트레트, 두 번째는 상대를 뒤쫓는 커브를 날리는 식이죠.
그리고 격투를 구성하는 요소를 알기 쉽게 시각적으로 나타내기로 했습니다. 예를 들어, 공격 후 생기는 빈틈은 팔이 줄어드는 시간으로 표현했습니다. 이를 통해 팔이 늘~어난 동안에는 방어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약한 펀치, 강한 펀치 같은 공격 강도는 가벼운 ARM, 무거운 ARM처럼 팔에 변화를 주어 표현했습니다. 다양한 ARM을 조합해서 전략을 짤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기존 요소를 새롭게 구성하는 것은 게임을 디자인할 때 무척 중요합니다.
ARMS는 위와 같이 시각적 요소를 강조하는 동시에, 플레이어가 외워야 할 요소를 되도록 줄이는 것을 주요 방침으로 삼아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개발을 진행하다 보니, 이 당시 아직 시제품 단계였던 Joy-Con과 상성이 아주 좋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독특함'을 느낄 수 있었죠.
격투 게임에서는 딜레이 없는 확실한 조작이 요구됩니다.
Wii 리모컨 이후 10년 이상 지나 하드웨어 부분에서도 발전이 있었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소프트웨어 부분에서도 발전이 있었습니다. 지금 기술이라면 정밀하고 오동작이 없는 모션 컨트롤을 실현하여 상급자가 테크닉을 발휘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닌텐도 스위치라는 기기는 플레이 스타일에 맞춰 모습을 바꾸는 게임기입니다. 마리오 카트 8 디럭스처럼 버튼이나 모션, 거치형, 휴대형 가릴 것 없이 원하는 스타일로 놀 수 있는 게임을 ARMS도 목표로 삼았습니다.
단, 모션 컨트롤에 대한 주의 사항으로 ー 적당히 움직여도 즐길 수 있어야 하는 점, 그것만으로는 상급자를 이길 수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두었습니다. 다시 말해, 진입 장벽은 낮되 깊이는 있어야 하는 셈이죠.
이것은 마리오 카트가 지금껏 추구해온 과제로 ARMS도 여기에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또한, ARMS는 상위권 플레이어 간 대결에서도 버튼 조작과 모션 조작이 동등하게 싸울 수 있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실제로 세계 랭킹 선수 중에도 모션 컨트롤을 사용하는 플레이어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ARMS 파이터들의 팔이 늘~어나게 되었을까요?
'스플래툰'이 게임성에 맞춰 오징어 캐릭터를 선정했듯이 ARMS도 게임성에 맞는 캐릭터를 여러모로 모색했습니다.
요시가 혀를 늘~리거나 링크가 후크샷으로 싸우는 등 기존 IP를 사용하자는 안도 있었다고 합니다.
다만, 이때 검토한 것은 모두 '주먹'이 늘~어나기만 하는 캐릭터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액션이 다소 조촐하게 보이는 면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과감히 어깨부터 손까지 팔 전체가 늘~어나는 모습으로 바꾸어 보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이것이 돌파구가 되었습니다.
Joy-Con을 휘두르면 마치 자기 팔이 늘~어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게임 플레이 감각에 맞춰 '팔이 늘~어나는 인간'의 모습을 만들어내는 것이 닌텐도다운 점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ARMS 파이터의 팔이 늘~어나는 이유.. 야부키 코스케는 그것이 '닌텐도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팔이 늘~어나는 캐릭터 스프링맨이 탄생합니다. 머리카락은 스프링맨의 실제 머리카락이며 스프링 같은 탄력이 있습니다. 다른 캐릭터도 '늘~어나는 물건'을 모티브로 하여 디자인하였습니다. 평소에는 압축되어 있다가 펀치를 날리면 쭉~ 늘~어나는 것들 말이죠.
참고로 게임에 등장하는 스프링맨은 '3대 스프링맨'이라는 설정이 있다고 합니다.
가장 처음 나온 아이디어는 '리본'이었습니다. 그리고 리본 하면 팝 가수 같은 화려함이 잘 어울려 보였습니다. 캐릭터 목소리를 실제 가수가 담당했다고 합니다.
쇠사슬은 닌자 캐릭터와 결합했습니다. 사슬낫 같은 닌자 무기도 있으니까요.
참고로 '자라(ジャラ)'는 일본어에서 쇠사슬이 출렁이는 소리를 표현하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붕대하면 역시 '미라'. 하지만 단순한 미라는 독특함이 없으니 온몸을 단련한 파워풀한 미라를 표현해보았습니다.
중량급 파이터는 상대방을 압도하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개발팀이 좋아하는 라멘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도 자연스럽게 나왔습니다.
라면가게 인기 종업원이자 쿵푸의 달인 미엔미엔. 차지하면 거대화하는 왼쪽 팔에 이 캐릭터의 특징이 담겨 있습니다.
좌우 팔이 비대칭이기 때문에 어떤 ARM을 장착할지 가장 고민되는 캐릭터이기도 합니다.
뱀 하면 정글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지만 ARMS에서는 익스트림 스포츠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습니다.
재빠른 몸놀림과 구렁이 같은 두꺼운 팔이 특징입니다.
엉뚱한 아이디어를 낸 스태프도 있었습니다. 팔이 늘~어나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그 능력을 동경하여 로봇까지 만든 천재 소녀, 메카니카입니다.
이러한 설정은 ARMS의 세계관을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역할도 했습니다.
젤 상태의 인공생명체. 영어명 '헬릭스 (Helix)'는 DNA '나선' 구조를 뜻합니다. 팔뿐만 아니라 몸 전체가 늘~어나는 특징을 지녔습니다.
팔 대신 늘~어나는 머리카락으로 싸우는 배우. 우아한 몸짓이 특징으로 보는 이를 사로잡습니다.
전 세계 팬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은 캐릭터라고 합니다.
원래 서포트 아이템으로 고안한 로봇이었으나, 개발 과정에서 개성이 드러나 로봇견과 콤비를 이룬 파이터가 되었습니다. 가끔 강아지 로봇 바크가 도와주기 때문에 다른 캐릭터에 비해 운 요소가 강합니다.
ARMS에는 이밖에도 개성 넘치는 캐릭터가 가득합니다.
ARMS 대결은 '전투'가 아니라 '스포츠 경기'로 설정했습니다. 배경 세계는 지구와 비슷하지만 늘~어나는 팔이 일반화된 다른 세상입니다. 파이터들이 참가하는 ARMS 그랑프리는 그 세계에서 펼쳐치는 월드컵 같은 스포츠 축제입니다.
뒤에서 바라보는 시점을 사용한 덕분에 스테이지를 3D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3D 스테이지는 개발팀이 마리오 카트에서 지금껏 만들어온 환경입니다. 다만, 마리오 카트처럼 복잡한 코스를 만들면 집중해서 싸울 수 없으므로 각 스테이지에 조금씩 입체적인 요소를 넣었습니다.
스프링 스타디움은 트램펄린으로 둘러싸여 있어 튕기기 점프를 할 수 있습니다.
리본 링은 바닥에서 큐브가 튀어나옵니다. 큐브 위에 올라타거나 뒤에 숨어서 싸울 수 있습니다.
6개의 기둥을 어떻게 활용하는지가 승패를 가릅니다. 기둥이 부서지기 전에는 부메랑처럼 굽어지는 ARM이 유리합니다.
중앙 단상은 스모 '도효'를 모티브로 삼았습니다. 밑으로 떨어지면 단번에 구석으로 몰리며 위기에 처합니다.
이렇게 아무것도 없이 깔끔한 스테이지는 상위권 플레이어한테 평가가 좋다고 합니다.
ARMS 세계의 격투 스포츠라는 설정에 설득력을 더하기 위해 파이터들이 입은 의상이나 스테이지 배경에도 신경을 썼습니다. 마리오 카트 8에서도 가공의 메이커 로고나 마크를 여럿 만들었는데 그 경험을 살렸다고 합니다.
컬러풀하고 톡톡 튀는 분위기 속에서도 파이터들이 진지하게 대결에 임하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ARMS의 세계를 다룬 그래픽노블이 Dark Horse Comics를 통해 2018년 출시될 예정이었으나 2019년으로 연기된 후 아직까지 별다른 소식이 없는 듯합니다..)
야부키 코스케가 대전 게임에서 중요시하는 것은 '기술'과 '행운'의 밸런스. 예를 들어, 마리오 카트에서 어떤 아이템을 받을지는 운에 의존하는 요소입니다. 아무리 운전 기술이 뛰어나도 등껍질을 맞거나 바나나를 밟아서 지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ARMS는 테니스 경기 정도를 이미지 삼아 제작했습니다. 상대가 왼쪽으로 움직일지, 오른쪽으로 움직일지 예상해서 펀치를 날려야 하기 때문에 다소 운에 좌우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도 결국은 실력을 쌓은 플레이어가 이기겠죠.
대전 게임도 여타 스포츠처럼 정해진 룰 안에서 서로의 실력을 겨루고 관객에게는 보는 재미를 선사합니다.
원패턴 전술로 이길 수 있는 게임은 플레이어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ARMS에서는 여러 캐릭터와 ARM의 조합으로 다양한 전술을 구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조합은 양이 무척 방대하기 때문에 개발팀 인력만으로는 검증이 어려워 AI끼리 대결한 데이터도 참고하였다고 합니다.
게임 발매 후에는 실제 플레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밸런스를 조정합니다.
예를 들어, 마스터 머미는 리본걸이나 미엔미엔을 상대로 고전했지만 닌자라와 키드 코브라를 상대로는 우위를 점했습니다. 5% 정도 승률 차이라면 허용 범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단순히 전체 데이터만 보는 것이 아니라, 위와 같이 상위 플레이어 간 데이터나 지역별 데이터 등 다양한 시점에서 데이터를 분석하고 밸런스를 조정합니다.
또한, 데이터 수치 분석에만 그치지 않고 개발 스태프가 직접 온라인 플레이에 참여하거나 미국, 유럽 닌텐도에 있는 뛰어난 실력을 가진 스태프의 의견을 참고하기도 합니다.
플레이어들의 실력 발휘를 보여주기 위해 '온라인 공개 스파링'이라는 이벤트를 열기도 했습니다.
상위 랭크 플레이어를 온라인 로비로 초대하여 그 시합을 중계한 이벤트입니다.
이러한 형식의 온라인 토너먼트를 닌텐도에서 직접 개최한 것은 처음이었다고 합니다.
일본에서는 'ARMS 재팬 그랑프리'라는 공식 대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지역 예선을 거친 플레이어가 모여 결승 토너먼트를 치렀습니다.
대전 격투 게임의 주인공은 실제 대결을 하는 플레이어입니다. 개발팀뿐만 아니라 게임을 플레이어하는 유저가 함께 ARMS를 성장시키는 것입니다.
격투 게임에 익숙하지 못한 플레이어를 위해 여러 가지 미니게임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가볍게 오랫동안 즐길 수 있도록 배지 수집 기능이나 파티 잭 같은 이벤트 모드를 추가하고, 감춰두었던 비밀 파이터도 공개했습니다.
'가족이나 친구 사이의 소통'은 마리오 카트 개발에 오랫동안 참여한 콘노 히데키가 늘 강조한 점입니다. 마리오 카트나 스플래툰 같은 대전 게임은 물론 동물의 숲, 닌텐독스 같은 게임도 소통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젤다의 전설을 할 때도 공략 정보를 공유하며 교류하게 되니까요.
많은 소통이 일어나도록 게임을 디자인하는 것은 닌텐도가 가진 근본 정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ARMS 역시 언어, 지역, 연령에 상관없이 전 세계 사람이 소통하며 즐길 수 있는 게임을 목표로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모두 ARMS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