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재해 회고록① '영광의 승리호' / 파이널판타지14

※ 2014년 8월, 파이널판타지14 신생 에오르제아 탄생 1주년을 맞이하여 실시한 이벤트 '에오르제아 생탄제' 당시 웹 사이트에 총 5회에 걸쳐 연재된 글 (원문링크)

 

한때 세상을 뒤흔들었던 제7재해는 에오르제아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다양한 인물들이 총 5회에 걸쳐 제7재해를 돌이켜봅니다.

 

제7재해 회고록② '여왕 폐하와 일곱 라라펠'

제7재해 회고록③ '떠나간 벗, 찾아온 벗'

제7재해 회고록④ '그녀가 보낸 15년'

제7재해 회고록⑤ '두 번의 출항'

 

제7재해 회고록① '영광의 승리호'

 

'흑와단 전군에 고한다. 지금 이 시각 이후로 모든 명령을 철회한다.
모든 대원은 각자 판단하에 퇴각하라!'

 

씁쓸한 결단이었다.

바다도시 '림사 로민사' 총사령부 '흑와단'을 이끄는 제독, 멜위브 블루피쉰은 카르테노 평원에서 물러서기로 했다.

달의 위성 '달라가브'가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에오르제아 열두 신을 불러내려던 작전은 갈라진 위성 안에서 나타난 '검은 야만신' 앞에 힘없이 산산조각 났다.

현자 루이수아는 그래도 계속 신을 불러내려 했지만, 이미 전선은 무너진 뒤였다.

 

'그리고 본대는 뒤에 남아라.
특수지상부대 모험가들을 먼저 철수시켜!'

 

멜위브는 대의를 위해 함께 싸워준 자들을 생각하여 그리 명령한 뒤, 곧이어 자신이 아끼는 초코보 '승리호'에 올라탔다.

 

'에인차! 나는 본대와 함께 가서 철수를 지휘하겠다!
너는 퇴로를 확보하고, 탈출한 부대와 합류해서 전열을 가다듬어라!'

 

이럴 때 보통 부하라면 위험한 임무에 나서려는 제독을 말릴 것이다.

하지만 에인차 슬라퓌어쥔은 상대가 진심이라는 것을 알아채고 경례만 올린 뒤 아무 말 없이 떠나보낼 줄 아는 그런 사내였다.

그렇기 때문에 멜위브는 그를 부하로서 곁에 두고 있는 것이다.

 

 

대형 '데스트리에 종' 가운데서도, 유난히 더 체격이 좋은 초코보 '승리호'가 늠름한 다리로 전장을 누빈다.

동그랗고 검은 눈동자 속에 두려움을 품었지만, 주인을 위해 그것을 억누르는 훌륭한 초코보다.

그러나 승리를 기원하며 붙여진 그 이름값까지 몸소 보여주진 못했다.

지금 에오르제아 동맹군은 패배하여 물러날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멜위브는 혼란에 빠진 아군 부대를 찾아낸 뒤, 철수를 지시했다.

그러던 중 물러나는 부대들과 달리, 제국군 부대 쪽으로 맹렬히 달려드는 부대를 발견한다.

해적세력을 모아서 만든 타격지상부대에 속한 자들이었다.

 

'뭐하는 짓이야, 물러서! 승부는 이미 결정 났다!'

 

소리치는 멜위브를 향해 대든 것은, 삼대 해적단 중 하나인 '붉은 피 성녀단' 두목 로즈웬이었다.

여해적은 아름다운 미스릴빛 권총을 치켜들고 외쳤다.

 

'그걸 말이라고 해! 우리 동료가 몇이나 죽은 줄 알아!
제국 이 개자식들을 쳐죽여주겠어!'

 

동료를 잃고 격분한 로즈웬은 오로지 피와 복수에만 빠져있었다.

그런 그녀를 설득해서 보낼 도리가 없었다.

말다툼이 이어지는 동안, 제국군 후속부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제길!'

 

멜위브는 허리에 찼던, 자신이 아끼는 권총 '데스패널티[죽음의 형벌]'와 '어나이얼레이터[절멸자]'를 뽑아들고 다가오는 적을 향해 총구를 겨눈다.

한 발, 두 발…… 쌍열식 권총에서 총알을 쏘아대며, 적 보병을 차례로 쓰러뜨린다.

세 발, 네 발…… 연달아 총질을 해보지만, 아무래도 적이 너무 많다.

게다가 그 뒤에서, 검게 빛나는 커다란 물체가 나타났다.

몸집 큰 '승리호'보다 더욱 커다란 그것은 제국군이 자랑하는 기병무기 '마도 아머'였다.

마치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는 짐승처럼, 입을 닮은 철갑이 열리며 거대한 포신이 튀어나온다.

그리고 멜위브는 마도포가 번쩍이는 것을 보았다.

 

'윽!!'

 

재빨리 '승리호'의 배를 박차서 달려나갔기에 직격탄은 겨우 피했지만, 바로 옆에서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하지만 포탄이 터진 소리 때문에 귀가 안 들리는 듯하다.

묘한 정적 속에서 멜위브는 자기 몸이 쓰러져있다는 것을 알았다.

다리 쪽이 따뜻한 것을 느꼈다. 피다. 하지만 자신의 피는 아니다.

제국 병사가 쏜 탄환이 초코보 갑주를 뚫고 '승리호'에게 치명상을 입혔다는 것을 깨달은 건 그 뒤였다.

 

눈을 뜬 멜위브가 처음으로 본 것은 낯익은 선실 천장이었다.

흑와단 총 기함 '트라이엄프호[개선호]' 뒤쪽에 만들어진 선장실이었다.

 

'제, 제독님이 눈을 떴습니다! 대장, 대장님!'

 

의무병처럼 보이는 사내가 뛰쳐나가더니, 잠시 후 덩치 큰 남자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너무 오래 주무시는 거 아닙니까, 제독님'

 

덩치 큰 남자, 에인차는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엉망진창 더러워진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 뒤로 며칠이나 지났지? 현재 상황은?'

 

'이틀입니다……. 지금은 멜토르 해협 위에 떠 있고, 보시다시피 개선호 안입니다'

 

에인차는 지금껏 일어난 일을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제국 병사가 쏜 총을 맞고 '승리호'가 목숨을 잃었다는 것과

초코보와 함께 넘어질 때 머리를 세게 부딪쳐 정신을 잃은 그녀를

해적단 '단죄당' 무리가 철수할 때 짊어지고 왔다는 것도 말이다.

참고로 로즈웬은 마지막까지 철저히 맞서 싸우려 했으나, 평소엔 그렇게 사이가 나쁘던 '백귀야행' 두목 카르발랭이 억지로 자기 초코보에 태워서 납치하듯 끌고 나왔다고 한다.

마치 이슈가르드 기사처럼 화려한 손놀림이었다고 하니 놀랄 일이다.

이 일이 상당히 굴욕적이었는지, 로즈웬은 지금도 카르발랭을 '겁쟁이'라 욕하는 모양이다.

어찌 됐든, 철수한 흑와단 장병들은 다른 동맹군 부대와 함께 다날란까지 가서 부대를 다시 꾸렸다.

저녁별 만에 머무르던 함대에 나눠타고, '림사 로민사'로 향하던 참이었다고 한다.

 

'울다하 연금술사 녀석들은 절대안정을 취해야 한다느니 난리 치면서
제독님을 못 데려가게 했지만 말입니다.
그렇지만 제독님은 기울어진 배를 버리고 도망친 선장이란 소리는 듣기 싫을 거 아닙니까?'

 

멜위브는 고향 '림사 로민사'를 종종 배에 빗대어 '거함'이라 부르곤 했다.

에인차는 그 배의 선장이자, 제독인 그녀가 재해를 당한 고향에 한시라도 빨리 돌아가고 싶으리라 판단한 것이다.

그녀 역시 의식이 있었다면, 아무리 크게 다쳤어도 그렇게 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서로 마음이 통하며, 자기 뜻을 헤아려 움직여주는 사내가 있어 든든하게 여긴다.

 

'그래서, 그자는 무사한가?'

 

멜위브는 당연한 질문을 던졌다. 마땅히 물어봐야 할 것을 물어보려 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엔 눈치 빠른 부하답지 않은 대답만이 되돌아왔다.

 

'그자라니요? 대체 누굴 말하는 겁니까?'

 

물러서기로 마음먹었을 때는 분명 '누군가'가 무사하길 바라며 먼저 철수시키라고 명령했을 텐데, 그게 누구지?

이 당연한 사실이 기억나지 않자, 멜위브는 깜짝 놀랐다.

하지만 머리를 세게 부딪친 탓에 그런 게 아니겠냐고 에인차가 받아넘기니, 스스로도 그리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그 뒤로 며칠이나 휩쓸리듯 지나갔으니 말이다.

고향 바일브랜드 섬에 다다른 함대는 바다 위를 떠다니던 몇 사람을 건져 올렸다.

갈라디온 만에 쏟아진 달라가브의 파편이 큰 파도를 일으키고 있었다.

그들은 거기에 휘말린 자들이었다.

게다가 함대를 이끌어줄 '시리우스 대등대'에는 섬뜩한 주황빛 크리스탈이 달라붙어서 아름답고도 무시무시한 모습으로 바뀌어있었다.

신의 손아귀 곶 덕분에 '모라비 조선소'가 파도에서 지켜진 것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

멜위브는 이 항만 시설에 '개선호'를 비롯해 남은 함선을 한데 모은 뒤 현지에 임시 지휘소를 세우고 곧바로 재해복구 지원함대를 편성하여 보냈다.

 

 

구해낸 목숨도 있지만, 결국 구하지 못한 목숨도 있었다.

잠잘 틈도 없이 구조활동을 지휘하던 멜위브였지만, 머리 한구석에선 줄곧 '누군가'의 존재가 맴돌았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저 최선을 다해 일하는 수밖에 없었다.

 

순식간에 시간이 흘러, 모라비 조선소 임시 지휘소가 해체되고 '림사 로민사'로 지휘계통을 넘기는 날이 찾아왔다.

이제 모라비 조선소는 원래대로 '배 만드는 일'을 다시 맡을 것이다.

얼마 전, 그 첫 번째 배가 될 흑와단 군함을 만들기로 하였다.

새로 만드는 배에 이름을 붙여달라고 부탁받은 멜위브는 망설임 없이 '승리호'라는 이름을 지었다.

그날 쟁취하지 못한 승리를 이번에야말로 손에 넣기 위하여.

그리고 언젠가 다시 만날 '누군가'와 함께 승리를 축하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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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재해 후유증'

 

제7재해 당시 있었던 일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현상.

그러나 에오르제아를 구한 영웅이 있었다는 것만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으며, 그 영웅들을 '빛의 전사'라 부르게 되었다.

 

△ 초코보 '승리호'와 멜위브 제독

 

▽ 모라비 조선소에서 만들고 있는 함선 '승리호'

 

멜위브의 쌍열식 권총 / '데스패널티[죽음의 형벌]' & '어나이얼레이터[절멸자]'로 추정되는 두 총.

 

해적단 '백귀야행' 두목 카르발랭 & '붉은 피 성녀단' 두목 로즈웬

 

그리고 발렌티온데이 이벤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