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천비화① '친구 그리고 용' / 파이널판타지14 창천의 이슈가르드

 

※ 2015년 8월부터 파이널판타지14 글로벌판 공식 웹 사이트에 총 8회에 걸쳐 연재된 글 (원문링크)

 

※ 신생 에오르제아 & 창천의 이슈가르드 주요 스토리 내용 중 일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파이널판타지14: 창천의 이슈가르드 편에 등장한 인물들의 뜻밖의 만남, 그리고 스토리에서 미처 말하지 못했던 마음을 담은 특별한 이야기 '창천비화'를 공개합니다!

 

'친구 그리고 용'

 

이른 아침 내린 비로 축축해진 마른 풀 더미가 새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불타오르고 있다.

그 연기를 들이마실 때마다, 숨이 턱 막히는 듯했지만 소년은 죽을 힘을 다해 계속 달렸다. 제발 무사하기를 바라면서.

하지만 그러한 바람은 맥없이 무너졌다.

힘겹게 도착한 집 앞 마당에서 불에 탄 부모님의 시체를 보았기 때문이리라.

적어도 남동생만은 살아남았길 바라던 작은 희망마저 반쯤 주저앉은 집에 들어서자마자 사라지고 말았다.

그곳에 있던 것은 바닥에 누워있는 동생 모습뿐…….

소년은 동생 곁으로 달려가 무릎을 꿇었다.

상반신은 상처 하나 없이, 그저 곤히 잠들어 있는 듯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끔찍하게도 하반신은 무너진 대들보에 깔려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눈처럼 새하얀 동생의 머릿결을 어루만지며 소년은 폭포 같은 눈물을 흘리고, 원망했다.

고향 '펀데일'을 덮친 사룡 '니드호그'를…… 

양을 몰러 나갔다가, 혼자만 살아남게 된 자신의 운명을…….

 

'이봐, 살아있으면 어서 일어나라고!'

 

웬 남자가 부르는 소리에 이끌리듯이 에스티니앙은 꿈에서 깨어났다.

 

'알베리크……?'

 

눈앞에 흐릿하게 보이는 남자 모습에, 에스티니앙은 반사적으로 자기 스승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아무래도 사람을 잘못 본 모양이다.

 

'알베리크 경 말인가?
보아하니, 아직 꿈에서 덜 깬 모양이군. 이거라도 마시고 정신 차려'

 

양의 위장으로 만든 물통에 담긴 물을 억지로 삼킨 뒤 에스티니앙은 겨우 정신을 차렸다.

검은 머리를 한 어떤 젊은 남자가, 땅에 엎드려 있던 에스티니앙 곁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걱정스러운 듯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다.

나이는 서로 엇비슷한 것 같다…… 20대 후반 정도.

철회색 사슬갑옷을 보니, 같은 '신전기사단' 사람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다.

에스티니앙은 오직 용을 잡기 위한 힘을 얻으려고 밤낮으로 창술 훈련만 해온 탓에, 신전기사가 된 뒤로도 다른 단원들과 어울리지 않고 늘 홀로 점잖게 지내왔기 때문이다.

 

'고맙다, 신세를 졌군……'

 

그렇게 말은 꺼냈지만, 결국 말문이 막혔다.

 

'이거 참, 같은 부대 사람인데 아직 이름도 못 외웠나?
내 이름은 아이메리크다. 어쨌든, 우리 둘 다 이런 상황에서 용케 살아남았군'

 

 

그 말을 듣고, 에스티니앙은 주위를 둘러보다 숨이 멎는 듯했다.

아직 불씨가 남은 목초지에 열 명도 넘는 기사가 쓰러져있었다.

거센 불길에 휩싸였는지, 다들 살갗이 불탄 채 갑옷도 그을음투성이다.

그 광경을 보고 나서야 이제껏 벌어진 일이 떠올랐다.

드래곤족을 봤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른 아침 부대 동료들과 함께 중앙저지로 가서 무궁호수 주변을 살펴보러 나섰던 일.

완만한 목초지 들어서자, 바위 뒤에 숨어있던 커다란 드래곤한테 습격을 받아 내뿜는 불길에 휩싸였던 일.

과감히 맞서 싸우다, 어찌어찌 창을 찔러 넣어 겨우 무찌른 일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아무래도 그 뒤에 연기를 한껏 들이마신 탓에 정신을 잃은 모양이다.

옛날 꿈을 꾼 것도, 어쩌면 목초가 탈 때 나는 이 독특한 냄새 때문일까…….

그런 생각이 들자, 숨을 거둔 동료들 주검에 부모님 모습이 겹치며 커다란 분노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 끓어올랐다.

부모님…… 그리고 동생의 원수인 드래곤족을 단 한 마리도 살려두지 않으리.

 

'옛날부터 목숨줄 하나는 질겨서 말이지……'

 

자리에서 일어난 에스티니앙은 눈앞이 어지러웠지만, 동료들 주검 사이에서 창 한 자루를 집어 들고 걸음을 옮겼다.

 

'이봐, 성도는 반대쪽이라고!'

 

'아이메리크'라고 하던 검은 머리 기사가 당황한 기색으로 불러세웠다.

 

'기껏 목숨을 건졌으니, 넌 성도로 돌아가라…….
난, 반드시 그놈 숨통을 끊어놓겠어'

 

'혼자서 드래곤을 잡겠다고? 막무가내로군!
게다가 쫓아가려 해봤자, 우릴 덮친 드래곤이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잖아?'

 

에스티니앙은 뒤를 돌아보며 살며시 웃었다.

 

'정신을 잃기 전, 그놈 배때기에 창을 처박아줬지.
봐, 목초지 쪽으로 피를 흘리면서 간 흔적이다…… 이걸 따라가면 분명 잡을 수 있을 거야'

 

이 말을 남기고, 에스티니앙은 다시 홀로 걷기 시작했다.

끔찍한 옛 기억을 떠올리게 한 빚은 반드시 갚아주리라.

 

몇 시간이나 추적한 끝에, 에스티니앙은 마침내 사냥감을 찾아냈다.

상처 입은 드래곤은 몸을 숨기려고 깊은 골짜기 속 천연동굴로 달아난 듯하다.

 

'내 체력도 넉넉하진 않으니…… 서둘러 끝장내주마!'

 

에스티니앙은 굳게 다짐을 하듯 중얼거리고선 창을 들고 뛰쳐나갔다.

드래곤은 습격을 알아채고 고개를 들었지만, 이미 거리가 충분히 좁혀진 뒤였다.

드래곤이 화염을 내뿜었지만, 에스티니앙은 품속으로 파고들어 몸을 피하며 창을 꽂아넣는다.

전쟁강철로 만든 창끝이 드래곤의 날개막을 찢는다.

고막을 찌를 듯한 울부짖음이 동굴 안에 울려 퍼진다.

 

'크하하…… 이제, 날아서 달아나진 못할 거다.
애당초 이런 좁은 동굴 안에선 마음껏 날아다니지도 못하겠지만 말이야!'

 

그러나 아끼던 날개를 다친 탓에 미쳐날뛰는 드래곤은 애초에 달아날 마음이 없는 모양이다.

드래곤은 아픔과 분노로 치를 떨며 에스티니앙을 덮치려 다가온다.

결국, 어두컴컴한 동굴 안에서 젊은 신전기사와 상처 입은 드래곤이 서로 맞붙었다.

에스티니앙이 휘두른 창이 용비늘을 잘라낸 듯싶다가도, 드래곤이 내뿜은 불꽃이 사슬갑옷을 새빨갛게 달군다.

서로 체력을 소모하며, 엎치락뒤치락 싸우던 상황은 우연한 일로 갑자기 바뀌었다.

에스티니앙은 장애물이 많은 동굴 지형을 활용하여 몇 번이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런데 피했던 불꽃이 바위벽 일부를 녹인 탓에, 결국 뜨거운 열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진 것이다.

온 신경을 드래곤한테 집중하던 에스티니앙은 갑자기 머리 위에서 쏟아진 돌덩이를 미처 깨닫지 못했다.

 

'쳇!'

 

치명상을 입을 만한 커다란 바위는 겨우 피했지만 이어지듯 들이닥친 드래곤 꼬리는 피할 수가 없었다.

온몸을 찌르는 충격에 에스티니앙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동굴 벽으로 내팽개쳐졌다.

 

눈앞이 점점 흐려졌지만 의식은 오히려 또렷했다.

드래곤이 한발 한발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려도 머리를 부딪친 탓인지 몸은 꼼작도 하지 않는다.

 

'여기까진가……'

 

겨우겨우 손끝에 창을 집어 들 만한 힘이 생겼을 때는 이미 드래곤이 눈앞에 서 있었다.

커다란 분노를 불꽃에 담아 내뿜으려는 듯 크게 숨을 들이마신 드래곤의 폐가 점점 부풀어 오르는 것을 에스티니앙은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하지만 그 화염은 에스티니앙을 불태우지 못하였다.

갑자기 드래곤 머리가 뒤로 젖혀지며 엉뚱한 방향으로 불꽃이 날아갔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는 잘 몰랐지만 에스티니앙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으으으으으어어어엇!'

 

우렁찬 외침과 함께 에스티니앙은 있는 힘을 모두 끌어모아 뛰어올랐다.

마치, 그 옛날 자신을 구해준 '푸른 용기사'의 움직임을 빼닮은 완벽한 도약공격이었다.

가장 높이 올라간 곳에서 몸을 비틀어 창끝에 모든 체중을 싣고 스스로 창과 하나가 되어 떨어졌다.

 

 

그리하여 에스티니앙은 처음으로 용을 잡는 데 성공하였다.

쓰러져 누워있는 커다란 드래곤의 눈에는 화살 한 발이 깊이 박혀있다.

멍하니 죽은 드래곤을 바라보던 중 손에 활을 든 남자가 곁으로 다가왔다.

 

'너는…… 성도로 돌아간 줄 알았더니……'

 

'멍청한 소리 마.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혼자 드래곤을 쫓아간 동료를 내버려둘 만큼 야박하진 않으니까'

 

'고맙다…… 신세를 졌군……'

 

무뚝뚝하게 고마움을 표하는 에스티니앙을 바라보며 검은 머리 청년은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이걸로 두 번 빚을 진 건가. 성도에 돌아가면 술이라도 한잔 사.
그리고 내 이름은 아이메리크다. 자네 친구가 될 사람 이름 정도는 외워두라고'

 

이번에는 에스티니앙이 멋쩍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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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에스티니앙과 친구가 된 것은 이래저래 10년 정도 되었지……

아이메리크 말로 추측해보면 창천의 이슈가르드 시점에서 약 10년 전에 일어난 일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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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천비화② '얼음의 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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