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천비화⑤ '마지막 창천기사' / 파이널판타지14 창천의 이슈가르드

 

창천비화① '친구 그리고 용'
창천비화② '얼음의 여신'
창천비화③ '은빛 검날 오르슈팡'
창천비화④ '여왕 폐하의 두 번째 선서'
창천비화⑤ '마지막 창천기사'

 

※ 신생 에오르제아 & 창천의 이슈가르드 주요 스토리 내용 중 일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파이널판타지14: 창천의 이슈가르드 편에 등장한 인물들의 뜻밖의 만남, 그리고 스토리에서 미처 말하지 못했던 마음을 담은 특별한 이야기 '창천비화'를 공개합니다!

 

'마지막 창천기사'

 

창천기사단 총장 방드로 드 루셰망드는 고민에 빠졌다.

그의 나이 65세. 몸은 예전 같지 않고 기사로서의 삶에 한계를 느낀 지도 꽤 되었다.

하지만 지금 가장 큰 고민은 그런 사소한 것이 아니다.

교황을 지키는 창천기사가 된 지 어언 40년이 지난 지금, 처음으로 지켜야 할 대상에 의문을 품게 된 것이다.

한 달 전쯤에 일어난 일이었다. 방드로는 교황청 안뜰로 통하는 대문 앞에서 경비를 서고 있었다.

교황 토르당 7세가 홀로 묵상하기 위해 안뜰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는 일상적인 일이었으나…… 이날은 달랐다.

잠시 후 그의 귀에 어렴풋이 말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혼잣말이나 기도하는 소리이겠거니…… 그렇게 생각했으나, 그중에는 교황이 아닌 다른 목소리도 섞여 있었다.

침입자라면 당장 교황을 지키러 가야 하겠지만, 혹시나 착각이라면 늙어서 귀가 어두워졌다는 사실만 드러내는 꼴이다.

고민 끝에 방드로는 기척을 감추고 안뜰에 들어가 몰래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는 보고 말았다. 검은 옷을 입은 수상한 인물과 토르당 7세가 밀담을 나누는 현장을……

 

일등 이단심문관 샤리베르 르지냐크는 대놓고 신경질을 부리고 있었다.

샤리베르는 자신이 맡은 일을 천직이라 여겼는데, 요즘 들어 그의 욕구를 채워줄 '먹잇감'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한심한 부하가 얼굴을 내밀었으니 짜증이 치밀어 오를 수밖에.

긴장한 탓인지 길게 묶은 금발 머리를 가만히 두지 못하는 신입 부하. 듣자 하니, 웬 편지 한 통을 가져온 모양이다.

 

 

뭐야 이건……

 

받아 든 편지는 보낸 사람 이름 없이 밀랍으로 봉인되어 있었는데 인장도 찍혀 있지 않았다.

이래서야 누가 적은 편지인지 알 도리가 없지 않은가.

 

그, 글쎄요……
오늘 아침에 검은 로브 차림을 한 사내가 넘겨주길래 받았는데……

 

심부름꾼한테 보낸 사람 이름조차 묻지 않은 무능한 부하를 나중에 따끔히 혼내줘야겠다고 생각하며, 샤리베르는 손끝에 마력을 집중시켜 '불'을 켜고는 그 열로 밀랍을 녹이기 시작했다.

정확히 밀랍만 녹이고 편지에는 그을음 자국 하나 남기지 않는 모습은 그가 화염마도사로서 얼마나 뛰어난지 보여주었으나, 부하 입장에서는 그저 공포스러운 대상일 뿐이었다.

수려한 손놀림으로 편지를 꺼내 들고 눈으로 훑어보던 샤리베르는 한 글자 한 글자 읽어 내려갈 때마다 자연스레 자신의 입꼬리가 흐뭇하게 올라감을 느끼며 생각했다. 역시 이단심문관은 천직이라고.

 

깊은 밤 교황청 맨 꼭대기에서 밤바람을 맞으며 방드로는 창천기사란 과연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보았다.

물론 이미 답은 알고 있다.

성도 이슈가르드를 정치와 종교 양측에서 이끄는 교황을 지키는 자.

건국의 아버지 토르당과 함께 사룡 니드호그에 맞서 싸운 열두 기사를 본받아 엄선된 열두 명의 기사가 모인 이슈가르드 최정예 집단.

전쟁신의 방패 대신 교황을 지키며, 전쟁신의 창 대신 적을 무찌르는 자.

그것이 바로 창천기사이다.

 

하지만 그렇게 지켜야 할 교황이 다른 이도 아닌 혼돈의 사자 '아씨엔'과 내통하고 있다니……

더군다나 야만신 소환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 않았던가.

심지어 전쟁신 할로네를 소환하려는 것도 아닌, 전혀 다른 '무언가'를 신으로 소환하려 하고 있었다.

전쟁신을 숭고한 수호신으로 섬기는 이슈가르드 정교의 가르침에 어긋난 행동임은 분명하다.

 

방드로는 고민 끝에 결심했다.

교황 본인에게 그 뜻을 직접 물어볼 수밖에 없다고.

그리고 대답에 따라서는 이단자로서 처단하리라고 말이다. 자신의 검으로……

방드로는 결코 돌이킬 수 없는 길로 걸음을 내디뎠다.

밤의 고요함만이 가득한 교황청 가장 깊은 곳…… 교황 토르당 7세의 거주구로 통하는 문 앞에서 야간 경비를 서고 있는 부하 에르메노와 한마디 대화를 나눈다.

 

교황 성하께 급히 전할 일이 있다네

 

이 늦은 밤에 말입니까? 대체 무슨 일이기에……

 

손을 흔들어 에르메노의 질문에 답할 수 없다는 뜻을 표한 뒤, 방드로는 결코 아무나 접근할 수 없는 교황의 사적인 공간에 들어섰다.

창천기사단 총장이 아니었다면 이런 일이 가당키는 했을까.

조용히 문을 닫은 방드로는 무심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잠시 후 복도 너머로 사람 그림자가 나타났다.

 

설마……!?

 

불현듯 스치는 '아씨엔'이란 단어를 꾹 삼킨 채, 방드로는 재빨리 칼자루에 손을 얹고 길을 가로막은 로브 차림의 사내를 경계했다.

 

이런 늦은 밤에…… 어딜 그렇게 서둘러 가시는지요?

 

깊이 눌러쓴 후드를 벗은 사내의 얼굴에는 음흉한 미소가 가득했다.

머리를 꽉 묶은 그 사내가 누구인지 곧바로 알아본 방드로가 되묻는다.

 

그대야말로 무슨 일이지…… 이곳은 이단심문관 따위가 있을 곳이 아닐세!

 

방드로는 사내가 아씨엔이 아니라는 점에 안도하면서도 결코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상대는 안 좋은 소문이 끊이지 않는 이단심문관 샤리베르.

상황에 따라서는 단숨에 파고들어 베어버릴 각오도 하고 있다.

 

오호, 저 따위 존재를 알아주시다니…… 영광스럽기 그지없군요……

 

샤리베르의 능청스러운 말투로 인해 방드로의 표정은 더욱 험악해진다.

 

이래 봬도 공무 수행 중이라서요…… 이단심문국에 투고된 정보에 따르면
오늘 밤 이곳에 이단자가 나타난다고 해서 이렇게 잠복하고 있던 참이었답니다

 

그 대답을 듣고 방드로의 표정은 더욱 일그러졌다.

 

설마 교황 성하가 나를……

 

어떻게 하여 자신의 행동이 읽혔는지는 몰라도 이 거주구에 샤리베르가 있다는 사실이 한 가지 결론을 나타냈다.

오랜 세월 교황을 섬긴 방드로를 제거하기 위해 교황이 직접 이 천박한 사내를 자객으로 불러들였다는 점이다.

방드로는 충격과 슬픔에 휩싸였지만, 그래도 그는 노련한 기사였다.

다음 순간 날아든 화염마법의 열기를 피하기 위해 그는 순식간에 몸을 날렸다.

그리고 즉시 낙법을 이용하여 일어선 후 방패를 들고 돌진한다.

하지만 이에 맞서는 샤리베르도 일류 마도사였다.

첫 기습 공격이 빗나가자 아쉬운 듯 혀를 차면서도 노기사의 돌진에 동요하지 않고 지팡이를 들어 올려 마법을 외우기 시작한다.

 

받아랏!

 

샤리베르가 내민 지팡이 끝에서 어마어마한 불덩어리가 쏟아지며 노기사의 방패에 부딪친다.

백전노장 방드로는 그 엄청난 열기의 위력을 깨닫고선 재빨리 녹아내린 방패를 던져버리며 곧장 검을 휘두른다.

 

쳇…… 늙은이긴 해도 역시 창천기사란 말인가……

 

샤리베르는 급하게 몸을 피했지만, 오른쪽 뺨이 비스듬히 찢어져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얕보지 마라, 애송아!
싸운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는 속셈인지는 몰라도
그 정도로 쓰러질 이 방드로가 아니다!

 

그 말대로 샤리베르는 힘을 조절하고 있었다.

바닥과 벽에 불필요한 그을음을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노기사의 육체를 태우기 위해서.

그러한 오만함 때문인지 샤리베르는 어느새 벽 쪽으로 몰리고 있었다.

이제 거리를 두고 마법전을 펼칠 수는 없다.

하지만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샤리베르는 기쁨 가득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오랜만에 즐겁게 해주는군요…… 그럼 그에 걸맞은 경의를 표하지요……

 

다음 날 아침.

평소보다 조금 일찍, 교황 토르당 7세가 거주구에서 홀로 모습을 드러냈다.

불침번을 서고 있던 에르메노와 마중을 나온 부단장 벨긴에게 교황은 조용히 말을 꺼낸다.

 

어젯밤, 방드로 경이 내 방을 찾아와 은퇴를 청했다네

 

예?! 방드로 경이 은퇴를요?

 

깜짝 놀라는 벨긴을 향해 교황을 고개를 끄덕였다.

 

그자도 기사로서 나이를 먹은 탓에 요즘 들어 몸이 예전 같지 않아 고민하던 모양이더군.
어제는 밤새 나와 이야기를 나누었다네……
지금은 다른 방에서 살짝 잠이 들었으니 잠시 가만히 두어주게.
그자도 휴식이 필요할 테니 말이야……

 

창천기사로서의 임무에 누구보다 강한 의지를 품고 있던 총장이 은퇴라는 큰 결단을 내린 심정을 헤아리며 벨긴과 에르메노 역시 뜨거운 감정이 복받쳤다.

그리고 존경하는 총장이 조용히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아침 예배에 나서는 교황을 따라 그 자리를 떠났다.

 

이후 교황청을 통해 창천기사단 총장 방드로 드 루셰망드 경의 은퇴와 제피랭 드 발루르당 경의 총장 취임이 정식으로 발표되었다.

하지만 새로운 총장의 취임식에 방드로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교황 토르당 7세는 이에 대해, 방드로 경 본인의 간곡한 부탁을 받고 혼자 여행을 떠나도록 허락했다고 설명했다.

그리하여 마지막 창천기사가 성도 이슈가르드를 떠났다.

교황 거주구 차가운 돌바닥에 어렴풋한 그을음을 남기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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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리베르의 흉터

샤리베르의 오른쪽 뺨에는 칼에 베인 흉터가 남아 있다

 

* 샤리베르의 한심한 부하

사건해결사 힐디브랜드 외전 창천편에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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